연차를 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밤새 키노트 보고, 오전 반차만 추가로 내고 출근했다. 피곤하냐고? 네. 그래도 후회 없다.
WWDC는 나한테 그냥 Apple 행사가 아니다. 1년에 한 번, 내가 매일 쓰는 도구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는 날이고, 이 생태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화면 보면서 같은 반응하는 공간이다. 그게 좋다.
Liquid Glass: 반응이 갈렸다
키노트에서 새 디자인 언어 Liquid Glass가 공개됐을 때 방 안 반응이 두 갈래로 확 나뉘었다.
"오 예쁘다" vs "이거 다 갈아엎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솔직히 둘 다였다. 반투명하고 유동적인 소재감이 화면에서 봤을 때 진짜 아름다웠고, 이게 Apple이 하드웨어부터 OS까지 수직통합한 회사라는 걸 다시 느끼게 해줬다. 안드로이드나 웹에서는 이 질감을 이렇게 뽑아내기 어렵거든.
근데 동시에 "이거 기존 앱에 다 적용하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iOS 7 때 플랫 디자인으로 전환되면서 앱들이 한동안 고통받던 기억이 있거든. 이번에도 비슷한 과도기가 생길 것 같다.
아쉬운 점이라면 실제로 적용됐을 때 어떻게 보이는지 서드파티 앱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거다. 커스텀이 많이 들어간 앱일수록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미지수고, 그 판단은 개발자 몫으로 남겨진 느낌이다.
Foundation Models: 이건 진짜 흥미로웠다
온디바이스 LLM을 개발자가 직접 쓸 수 있게 프레임워크로 열어준 것. 이게 제일 인상 깊었다.
API 호출 없이, 인터넷 연결 없이, 기기 안에서 추론이 돌아간다. 프라이버시는 기본이고, 응답 속도도 서버 왕복 없으니 빠를 수밖에 없다. "AI 기능을 앱에 넣고 싶은데 사용자 데이터를 서버에 보내기 부담스럽다"는 고민이 많이 사라질 것 같다.
물론 아직 모델 크기나 성능 한계가 있고, 복잡한 작업은 무리겠지만 — 텍스트 분류, 요약, 간단한 생성 정도는 충분히 실용적으로 쓸 수 있을 것 같고. 앞으로 어떻게 활용 사례들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iOS 26: 이름 바뀐 것도 의미 있다
버전 넘버링이 연도 기반으로 바뀐 것, 그냥 형식적인 변화처럼 보일 수 있는데 나는 꽤 의미 있다고 본다. 연도랑 맞추면 "iOS 26을 쓴다 = 2026년 릴리즈를 쓴다"가 직관적으로 연결되고, 버전을 숫자가 아니라 세대로 인식하게 되거든. 일반 사용자한테도 더 쉽게 와닿는 체계다.
와치파티 사람들이랑 나눈 이야기
키노트 끝나고 본격적인 스몰토크 시간이 됐을 때가 사실 제일 재밌었다.
바닐라 vs 써드파티
현대자동차 쪽 엔지니어 분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나온 주제인데, 써드파티 없이 순수 Apple 프레임워크만으로 개발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Apple이 방향을 바꾸면 써드파티는 다 따라가야 하는데, 그 비용이 누적되면..." 하는 시각이 있었고, "그래도 생산성 차이가 너무 크지 않냐"는 반론도 있었다.
나는 중간 어딘가에 있다. 온전히 바닐라로만 하면 유지보수 부담이 줄고 Apple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데, 규모가 커지면 아키텍처 없이 버티는 게 한계가 있거든. 중요한 건 "왜 이 라이브러리를 쓰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지인 것 같다.
TCA냐, MVI냐
TCA 쓰는 팀이랑 MVI 쓰는 팀이 같은 공간에 있었는데, 서로 설명하는 게 재밌었다.
TCA 쓰는 분들은 "명시성이 좋다, 테스트가 쉽다"는 얘기를 했고, MVI 쪽은 "단방향 흐름만 지키면 나머지는 자유롭다"는 입장이었다. 뭐가 낫다기보다 팀이 어떤 문제를 더 자주 겪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취준생분들이 이 대화를 듣다가 "어떤 걸 공부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내가 한 말은 — 어떤 아키텍처를 쓰든 단방향 데이터 흐름이 왜 좋은지, 상태 관리를 왜 한 곳에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먼저 이해하고 나면 어떤 것도 빠르게 익힐 수 있다고.
WWDC 위너분들이랑
실제로 Apple에 다녀온 분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Apple 내부 개발 문화나 WWDC 현장 분위기 같은 걸 직접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그래도 밤새운 게 맞냐고
맞다.
부산에서 올라오면서 "이게 맞나" 잠깐 생각했는데, 와치파티 자리에서 키노트 보고 같이 반응하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 그냥 확실해졌다. 이런 에너지가 좋다. 같은 생태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은 관심사로 밤새는 것.
오전 반차 내고 출근하면서 졸리긴 했는데, 그날 하루 종일 머릿속에 WWDC 내용이 돌아다녔다. 이거 어떻게 써볼 수 있을까, 이 API는 어디에 쓸 수 있을까. 그게 재밌었다.
결국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인 것 같다.